여름의 연한 노란색 꽃은 선비의 꽃_회화나무
“1989년, 이천”
기억에는 엊그제 같은데 따져보면 오래된 이야기다. 이천농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다. 설봉중학교라는 신설 중학교가 만들어졌고, 그 학교 교감선생님이 학교의 교화와 교목을 선정하기 위하여 나를 찾았다. 나는 그때 자생식물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임학 박사, 한의사, 스님, 그리고 몇몇 사람들과 옻나무 연구회도 함께 시작했다. 활동은 미미했으나 의식과 목표는 분명하였다.
사용되는 조경수목의 종류가 적은데도 다양한 자생수목을 조경수로 개발하여야 한다는 당위성만 앞서고 있는 실정이었다. 직접 수목의 종자를 채집하여 파종한 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일의 실천에 나서야 했다. 그렇게 여기 저기, 이산 저산 계획을 세워 종자를 수집하여 씨를 뿌렸고, 재배 관리를 하던 때였다. 그 교감선생님에게 학교의 교목과 교화는 자생식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의기투합되어 현란한 색깔의 영산홍, 자산홍을 제쳐두고 자생철쭉인 산철쭉을 교화로 삼았고, 학자수라 부르는 회화나무를 교목으로 정했다. 회화나무 노란 꽃이 피니 과거 응시생들 바쁘겠다는 말처럼 학교에 근사하게 어울리는 교목이었던 것이다. 1989년의 일이다. 지금 그 학교의 울타리에 아직도 회화나무가 왕창 커서 있을 것이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교화로 ‘철쭉꽃’, 교목으로 ‘회화수’라고 되어 있다. 이름을 분명하게 불러주어야 한다. 교화는 산철쭉, 교목은 회화나무라 해야 옳다.
나는 되레 설봉중학교 울타리 주변에 심은 회화나무를 계절마다 들락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심은지 얼마되지 않아 꽃과 열매까지도 가깝게 바라보며 관찰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의 즐거움이 폐부에서 다시 살아난다. 단침이 고인다. 종자를 채취하여 파종하여 길러낸 그때의 나무들도 이미 조경수로 이용되어 곳곳에서 장년의 나이를 넘기고 있다.
“학자수라 이름지어진 벼슬 높은 나무”
회화나무는 씩씩한 기상이 있고
바탕과 성품이 기품으로 가득하다
우람하고 거대하며 남성적이다
자라는 방향과 가지뻗음이 제멋대로 멋스럽다
그래서 선비의 기개에 빚대어 말하기도 한다
생김새가 함부로 지레짐작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자란다
학명이 Sophora japonica 이며 콩과의 낙엽교목이다.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중국에서는 높은 관리의 무덤이나 선비의 집에 즐겨 심었기 때문에 학자수學者樹(Chinese scholar tree)라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들여와 향교나 사찰 등에 심었다. 학명의 Sophora와 영명인 Chinese Scholar Tree에서 이 나무가 학문적인 어떤 분위기와 맥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에서는 매우 귀한 대접을 받으며 주로 선비들이 서당이나 서원에 즐겨 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궁궐이나 오래된 고가에서 이 나무의 고목을 많이 볼 수 있다. 선비에게 꼭 필요한 나무로 쉬나무와 회화나무가 있다고 한다. 회화나무로는 웅장한 기개와 품위를 배웠고, 쉬나무로는 열매에서 짠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화나무의 꽃이 위쪽에서 피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에서부터 피면 흉년이 든다는 믿음도 한다. 꽃이 많이 피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도 있다. 또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온양 행궁의 영괴대비靈槐臺碑”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동록된 일성록은 정조가 세손 시절의 일상생활과 학업 성과를 기록한 존현각 일기에서 비롯되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의하면, 영조 즉위 36년(1760년)부터 경술국치가 일어나는 순종 4년(1910년)까지의 국정 전반을 기록한 왕의 일기다.
일성록의 정조19년(1795년), 10월 19일의 기록을 보면 온양 행궁의 영괴대비靈槐臺碑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영괴대비의 앞면에는 ‘영괴대靈槐臺’라는 석 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어제영괴대명御製靈槐臺銘’이 새겨져 있다. 사도세자가 1760년(영조36)에 온양 행궁에서 활쏘기를 하고 사대射臺에 그늘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는 내용이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에게 사도세자의 행적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조목별로 나열하여 보고하게 하고 그 사실을 비석에 기록하여 대 옆에 세우라고 하교한 것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모든 것이 정조에게는 고마움이고 더없는 진실이며 그리움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온양 영괴대의 회화나무는 느티나무로 바뀌었다. 아마 회화나무보다 쉽게 구할수 있는 나무가 느티나무였기에 식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라도 회화나무로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창덕궁 돈화문 안의 회화나무”
「주례周禮」에 따르면 외조外朝는 왕이 삼공과 고경대부 및 여러 관료와 귀족들을 만나는 장소로서 이 중 삼공의 자리에는 회화나무槐를 심어 삼공 좌석의 표지로 삼았다고 한다. (‘면삼삼괴삼공위언面三三槐三公位焉 <「주례(周禮)」, 추관(秋官), 조사(朝士)>’)
창덕궁 회화나무가 궁궐 앞에 식재된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돈화문 안마당 좌우에 자리는 8그루 모두 천연기념물 472호로 지정했다. 1820년대 중반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에도 회화나무는 노거수로 그려져 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주례』, 「추관秋官」의 ‘조사’를 인용하고, 이어서 ‘소사구’의 직임을 “외조外朝의 정사를 관장하는 것이니, 모든 백성을 오게 하여 그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첫째는 나라의 위험함을 묻고, 둘째는 나라를 옮기는 것에 대해 묻고, 셋째는 임금 세우는 것에 대해 묻는다. 각자의 위치는, 임금은 남쪽을, 삼공 및 주장과 백성은 북쪽을, 여러 신하는 서쪽을, 여러 이吏는 동쪽을 향하는데,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 임금을 보좌하여 임금이 그 중 좋은 의견을 따르게 한다.”라고 했다. (백성에게 물어라, 순민詢民 | 『성호사설』 「제18권」, ‘경사문’)
제도적으로 백성들이 말할 수 있는 언로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백성의 처지와 나라의 안위, 중대한 국사 등에 참여하는 이 제도를 이익은 옛 성인의 빈틈없고 치밀한 제도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후세에, 권력에 빌붙은 측근이 독재를 하여 백성의 좋은 생각이 정치하는 사람에게 전달될 길이 없었다고 탄식하여 말한다. 여기 외조의 정사를 관장하는 곳에 회화나무 세 그루의 자리가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재배된 회화나무를 구입하고자 찾아온 이는 아는 사찰에 회화나무를 보내고자 한다며 예전에 회화나무를 사찰에서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기야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에도 400년 된 수령의 회화나무가 있다. 보통 회화나무를 유교의 상징으로 보리수나무를 불교의 상징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찰에도 학승과 선승이 있고 기술승이 있었으니 회화나무 역시 학승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다만 요즘의 사찰에는 기술승이 없는 게 못내 아쉽다. 모두 학승이고 모두 선승이다.
“개미굴의 영화도 모름지기 잠깐”
회화나무의 한자는 槐(홰나무 괴)이다. 공해에 강한 나무로 가로수나 공원수로도 활용되며 목재는 가구재로 이용한다. 동의보감에서는 괴실(열매), 괴지(가지), 괴백피(속껍질), 괴교(진), 괴화(꽃)의 순으로 회화나무의 약용을 설명하고 있다. 꽃봉오리를 괴미槐米라고 하는데, 노란색 계통의 블라보노이드 성분의 루틴 함량이 이때 가장 높고 꽃이 핀 다음에는 낮아진다. 부풀어난 꽃봉오리를 따서 방안에 놓아두어 수분을 날려보내면 꽃을 딴 지 24시간에 루틴 함량이 가장 높아진다(『약초의 성분과 이용』, 과학백과사전출판사편). 괴화는 동맥경화 및 고혈압에 쓰고 맥주와 종이를 황색으로 만드는 데 쓴다.
『산림경제山林經濟』, 「卜居」에서는 “주택 동쪽에 버드나무를 심으면 말에게 유익하고, 주택 서쪽에 대추나무를 심으면 소에게 유익하며, 중문中門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삼대가 부귀하고(中門有槐。富貴三世), 주택 뒤에 느릅나무가 있으면 백귀百鬼가 감히 접근을 못한다.”고 했다.
회화나무는 덧없는 인생을 비유하는 말에도 등장한다. 『다산시문집』, 「제2권」, 《시詩》의 ‘절에서 밤에 석문 신 진사와 함께 연구를 짓다寺夜同石門申進士聯句’를 보면 ‘수유의혈영須臾蟻穴榮’이란 시구가 있다. 개미굴의 영화도 모름지기 잠깐이라는 뜻이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당 나라 이공좌李公佐가 지은 《남가기南柯記》에서 나온 말로, 순우분淳于棼이란 사람이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에 가서 공주에게 장가들어 남가태수南柯太守를 지내는 등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마당가 회화나무 밑둥의 개미굴이 꿈속에서 찾아갔던 괴안국이었다는 것이다.
덧없는 인생을 깨우치는 회화나무는 늘 꿈을 꾸는 듯 높고 우람한 자태로 하늘을 이고 산다. 회화나무가 꽃피는 한여름의 운치는 비밀스럽다. 아주 커 쳐다보기 힘든 고목이 아니라 나이 많지 않아 눈높이에서 꽃을 볼 수 있는 크기의 회화나무 가로수라면 어떨까. 그 밑을 걸으면서 가지에 매달린 연노랑과 땅에 떨어진 꽃 잔치 사이를 갈등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깨어 있는가를 묻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홀로 걷는 즐거움과 깨어있는 각성을 촉구하는 회화나무 꽃비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