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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정원수목도감

올괴불나무 탐방기

by 온숨 2024. 3. 22.

 



 

올괴불나무 탐방기

 

 

지금쯤 피었겠지. 와룡매는 내일 찾아가기로 하고 오늘은 따스한 햇살 속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좇아 올괴불나무를 만나러 나선다. 가진 거 없이 파리한 몰골로 이른 봄에 슬쩍 짧게 화려한 외출을 한다. 한 해를 빨간 열매 만드는 데 공력을 모은다. 올괴불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새는 그러니까 축복받은 새이다.

그들은 오늘 피어낸 올괴불나무의 아찔한 도발을 알까? 눈 맑은 이의 심성에 들앉아 기다리게 한 청빈의 화려한 꽃이다. 몇 번의 봄비와 시샘으로 움찔 했겠다. 그렇다고 굴하진 않는다. 알면서 매서운 거리 두기를 쏟아냈겠다. 틈을 비집고라도 온기를 섭취한다. 힘 기르기는 인내의 순간이 모여 묶는다. 뜻 모를 타박과 핀잔의 냉대를 모르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쏘인다. 가끔 따갑고 저려도 존재의 깊이감을 더하는 외로운 상처라고 치부한다.

숲의 바람은 잔잔한 여울처럼 안온하다. 올괴불나무가 매우 좋아하는 순간이다. 피울까 말까를 재는 찰나이다. 햇살맞이 언덕배기로 진달래 꽃눈 부풀었다. 이렇다 할 애 쓴 흔적 없이 올괴불나무는 일어났을까. 아둔한 셈 대신 무릎 관절에 의념을 모아 한 걸음 더 빠르게 종주한다. 가다 보면 어느새 상봉의 그 자리에 이를 테지.

호수에는 버드나무 연두의 옷을 키워낸다. 한 땀 한 땀 천연 염색 들이는 동안 맑아진 물살이 너울댄다. 어디쯤 올괴불나무가 있었더라. 어느해 발견하고는 놀라서 소리쳤던 날이 었었다. 탄성을 자아내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눈길을 외면하였다. 그랬다. 단애취벽丹厓翠壁 근처였다.

윤선도의'어부사시사' 「동사7」에 나오는 풍광을 모신다. 산줄기 묵직하게 떨어져 쏟아지듯 호수로 뻗는 임계역(臨界域)에 단애취벽(丹厓翠壁)이 있다.

단애취벽(丹崖翠壁)이 화병(畫屛)같이 둘렀는데
거구세린(巨口細鱗)을 낚으나 못 낚으나
고주사립(孤舟蓑笠)에 흥(興)겨워 앉았노라

<어부사시사, 「동사 7」, 현대어 풀이>

'어부사시사' 「동사7」은 신명이 고조된 정신적 고양 상태이다. 여기서는 붉은 언덕과 푸른 절벽인 단애취벽(丹厓翠壁)이 깎아지른 암벽의 푸른 기운에 붉은 단풍이다.

지금 내가 즐거운 바를 즐길 수 있는 올괴불나무는 분홍의 화사함으로 마애절벽을 뒤덮었다. 이런 순간을 可以樂其樂也라고 한다. 즐거운 바를 즐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 마침내 올괴불나무를 만난다. 털썩 주저앉아 마구 모습을 담는다. 한 순간 흔적도 없이 꿈꾸다 말 우주의 정오이다.

-이천이십사년 삼월 스무이튿날, 산행 출근길에서 월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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