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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탐구24

신인합일의 조화로운 원림 미학 신인합일과 접화군생으로 다가서는 원림 미학 몸과 마음의 결연함 목도리 푼 목덜미로 부는 듯 마는 듯 살랑대는 바람은 제법 선선하면서도 언뜻 차다. 게으른 산행 출근길로 햇살은 35도의 각을 이루며 뜨는 중이다. 햇살은 막 켜진 전기스토브처럼 닿는 부위만 따사롭다. 이 시간을 걷는 이들은 한결같이 무표정이다. 심지어는 건널목 신호등 앞에 섰다가 녹색불이 들어와도 좌우로 고개를 둘러보지 않는다. 스윽 발걸음을 내딛는다. 마치 알 것은 이미 다 알았다는 결연함이다. 더 이상의 앎도 빛나는 재능도 넘치는 감각도 손사래 한다. 습관의 섭생적 반복 따사로운 햇살이 정수리와 얼굴을 감지한다. 잠시 따스함이 온몸을 한바퀴 돈다. 여기저기 뼈마디 에린 곳이 두두둑 소리 신호로 화답한다. 더 걷기 뻐근하면 쪼그린다. 협착.. 2024. 2. 26.
판상절리와 수직절리가 만든 인격 - 단양 사인암 명승 단양 사인암 명승 – 판상절리와 수직절리가 만든 인격 사군산수(四郡山水)라는 버킷리스트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 번 다녀와야 하는데….”를 연발하였다는 것이다. 영남이나 호남의 사대부에게 ‘사군산수(四郡山水)’ 또는 ‘사군강산(四郡江山)’은 더욱 특별하였다. 탐승지로서의 신비한 풍모를 보고 싶어 한시바삐 나서고 싶었던 곳이다. 사군(四郡)은 제천, 청풍, 단양, 영춘을 말한다. 서로 인접하여 대부분 암벽 산으로 이루어진 궁벽한 곳이어서 함부로 찾아들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암벽 산 주변으로 남한강의 비경이 곳곳에서 넘실댄다. 암벽에서 뿜어 나오는 화기(火氣)를 강물의 수기(水氣)가 휘감아 품어 아늑한 풍광을 만든다. 기어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 475년 전(1548, 명종 3), .. 2024. 2. 18.
원림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착 달라붙는다 - 함안 무진정 원림 함안 무진정 원림 – 원림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착 달라붙는다 탐승의 기쁨은 상상이 구체가 되어 감흥이 도도해질 때이다 함안은 처음이다. 최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말이산고분군’에 오르면 함안이 잘 보인다. 고분군이 분지를 이룬다. 말이산고분군에서 북쪽 남강을 향하면 함안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지긋이 세상살이 속세의 곡진함을 내려볼 수 있다. 고분군 남쪽으로 함안 성산산성이 있는 ‘조남산’이 있고, 조남산에서 함안천쪽으로 ‘무진정원림(無盡亭苑林)’이 위치한다. ‘말이산고분군’의 중간 지점인 ‘함안박물관’에서 무진정 원림까지의 직선거리는 2.4㎞이다. 사실 ‘무기연당’ 답사에 ‘고려동 유적지’와 ‘말이산고분군’을 탐승지로 더하였을 뿐이다. 그 와중에 무진정 근처 국밥집을 들리자는 제안은 있.. 2024. 1. 28.
서애 유성룡이 반한 운암의 풍광 파자형으로 흐르는 계류는 운암을 에워싼다. 보통 에워싸는 것은 무언가를 감싸려는 의도가 있다. 에워싼다와 감싸는 것은 그렇게 상호 보완적이다. 운암을 중심으로 계류가 에워싸듯 흐른다. 계류가 파자형의 곡을 그으며 흐르는것은 지형학적으로 고저의 물길 따라 그저 흐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물가에 놓인 높은 암벽의 의젓함이다. 나를 감싸라 한 적 없건만 그대들이 나를 사모하여 내 곁을 따라 빙 돌면서 흐르지 않는가! 굷고 가는 자갈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부르지 않았건만 수두룩하게 다가와서 이렇듯 즐비하게 진을 편성하여 더디게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지않는가. 조금이라도 운암의 풍광을 자세히 바라보라는 장치이다. 발걸을 뗄 때마다 발목이 좌우 가리지 않고 접힌다. 마치 발목 삘 때 꺾이는 정확한 각도를.. 2024. 1. 18.
『한중명승도첩』에 소개된 동아시아 최고의 풍광 - 보령 영보정 배롱나무 꽃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영보정의 단아한 자태 바람이 분다. 성급하게 가을을 힐끗 본다. 최기운 화백과 영보정(永保亭)을 찾았다. 최 화백은 최근 보령(保寧)을 주제로 연작화를 그린다. 어느 날 카톡으로 안부차 날아온 그림은 한 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보령의 영보정이었다. 영보정으로 생각의 향방이 갈렸다. 나팔꽃처럼 길게 늘어져 얽힌 답사 대상지의 선정이 죽비처럼 단호해졌다. 영보정은 그림으로 살며시 다가왔으나 당장 떠날 채비를 할 정도로 이끌렸다. 답사 일정은 기왕이면 최기운 화백과 동행하고자 한 주를 더 기다렸다. 그렇게 나서면서 그와 보령에 대하여 좀 더 가까워진다. 영보정은 오천항에 위치한다. 충청수영성의 영내에서 정박한 배들이 가장 잘 보이는 으뜸의 장소이다. 오천은 자라 오(鰲) 자와 .. 2024. 1. 14.
동복호 물결 일렁일 때 노 저어 송석정에 이르다. 송석정의 빼어난 풍광을 만난다. 내가 누정 답사를 다니면서 한국정원문화를 시의 경지로 들여다보는 ‘시경(詩境)’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후배가 있다. 어느 날 화순을 오시면 화순의 누정을 한 바퀴 안내하겠다 제안한다. 몇 번 다녀온 곳이긴 하나 훈훈한 온도를 감지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하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끌렸다. 날을 잡고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 한 차에 탑승하여 일정 시간에 맞춰 몇 군데를 들렸다. 주로 ‘화순적벽’ 일대를 돌았다. 화순적벽은 2017년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을 모두 통칭하여 화순적벽이라 일컫는다. 아무 때나 수시로 들어가 볼 수 없는 곳이 보산적벽과 장항적벽인데, 이곳은 화순군의 .. 2024. 1. 10.
한국 정원 기행 입문 : 한국 정원 문화를 개괄하다. 한국정원문화의 개념 한국정원문화는 현재도 꾸준히 사랑받고 전통적인 가치를 잃지 않고 이어진다. 한국정원문화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조성된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안정감을 준다. 한국정원문화는 주로 한옥 주택과 함께 조성되어 왔으며, 돌담, 연못, 나무, 꽃 등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로 성립한다. 이러한 정원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창조적인 손길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공간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문화적인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로 각인된다. 현재의 한국정원문화는 전통적인 정원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요소를 접목시키며 진화한다. 도시 내 공원이나 랜드마크, 리조트 등에서도 한국정원의 영감을 받은 조경이 구현된다. 또한, 한국정원의 기법과 철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전승하는 노력도 끊임.. 2024. 1. 9.
비첩 심리와 의절한 공간의 밤새기 토론 원고 마감이라는 통과 의례에 기꺼이 든다 요즘은 일 마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예전에는 몰아치기가 장기여서 오히려 시작하려는 준비 시간이 길었다. 마음과 몸이 익어가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아직 연필 깎는 중이라고도 했다. 노는 게 아니라 시작 전에 매 순간 그 일을 소환하고 동원한다. 그러면서 한순간 탄력 받아 긴 호흡 몰아쉬듯 어느새 마감의 통과 의례를 셈하고 있었다. 과거형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강의할 교재인 『시경(詩境)으로 본 한국정원문화(韓國庭苑文化)』를 세 달 가까이 원고와 교정을 마치고 편집본까지 마친 출판 직전의 상태이다. 그리고 다시 한 달 정도 매달린 전문 서적을 넘겼다. 집필 대표라 집필 동료의 원고까지 챙기며 이끌고 기다려주느라 일요일 마감과 송고를 어.. 2023. 8. 1.
원림 경영과 원림조영의 쉐입 그래머(Shape Grammer)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향유』 -08. 원림 경영과 원림조영의 쉐입 그래머(Shape Grammer) 원림을 경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산 윤선도는 머무는 곳마다 '산수치'라 자평하며 도대체 고칠 수 없는 질병처럼 '원림 경영'을 실천하는 자신에게 놀란다. 은근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흥분하고 탄복하며 감탄과 경악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자기 스스로 못말리는 열정과 취향의 세계에 든 것임을 진단하고 이를 마땅히 '허허~거참' 하면서 받아들인다. 계를 받듯 내 안의 부름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거부하지 않고 그러함이라며 자연스러움으로 치환한다. 그게 고산을 조선 최고의 조경가로 태어나게 한 기운의 원천이다. 고산 원림 경영의 위대함은 고산이 추구한 행복의 가치인 매일매일 성찰하며 원림을 미음완보(微吟緩.. 2022. 4. 16.
한국조경신문 『열린원림문화』향유 연재 목차 한국조경신문 『열린원림문화』향유 연재 목차 기사 (7건)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시흥(詩興)으로 공간과 장소를 새김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 | 2022-03-30 12:42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원림 리부트 - 단애취벽(丹厓翠壁)의 재발견 | 2022-03-17 09:30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도시의 원림을 꿈틀대게 하는 입춘의 일상 회복 가치와 치유 기반 | 2022-03-02 16:45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원림의 ‘닭울음소리’가 주는 정원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 | 2022-02-16 14:26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신명으로 바라보는 풍광인 ‘어와’의 발견 | 2022-01-26 14:06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스틱과 등산화가 대신하는 ‘죽장망혜’ | 2022-01-12.. 2022. 4. 8.
시흥(詩興)으로 공간과 장소를 새김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향유』 -07. 시흥(詩興)으로 공간과 장소를 새김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 ‘살고자 함’은 「생의(生意)」로 집결된다.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음, 또는 그 마음’을 ‘생의’라고 한다.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말과 대등하다. 가깝게 위치한 뒷동산과 이어지는 산림을 원림으로 삼아 곳곳에 의미를 각인하는 행위 또한 ‘생의’로 이어진다. 조경에서 물리적 장소성과 내용적 콘텐츠를 경유하는 것은 설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좋은 접근 방법이다. 이는 『열린원림문화』 향유의 실천 방식이기도 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원림 행위를 통하여 한국정원문화콘텐츠를 되살리는 일이다. 문화유산으로 전해지는 지극한 원림 문화를 오래된 미래로 받아들여 주체적 시민의 생.. 2022. 4. 7.
원림 리부트 - 단애취벽(丹厓翠壁)의 재발견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향유』 -06. 원림 리부트 - 단애취벽(丹厓翠壁)의 재발견 「원림 리부트」란 말을 사용하는 의미 「원림」이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을 지칭하는 학문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조원, 한국은 조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열린원림문화󰡕 향유에서의 「원림」은 중국의 원림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한국정원문화와 조경 유적의 본질을 소환한다. 한국정원문화콘텐츠를 어떻게 파악하고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하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임천’이라는 말이 매우 적절하겠으나 이미 󰡔○○○ 원림󰡕 등으로 문화유산 분야에서 호칭되고 있는 상황에 경의를 표하기로 한다. 어떤 집단에서 특정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 2022. 4. 6.
도시의 원림을 꿈틀대게 하는 입춘의 일상 회복 가치와 치유 기반 『온형근의 「열린원림문화」 향유』 -05. 도시의 원림을 꿈틀대게 하는 입춘의 일상 회복 가치와 치유 기반 원림 입구의 내원재에 이르면 겨우내내 고요해서 가끔 까치 소리나 듣는다. 그러다 입춘에 이르면 체감되는 일상이 다르다. 온갖 미물이 꿈틀대며 기지개 편다는 입춘 아니던가. 여기저기 수런대며 생동의 기운이 꿈틀댄다. 여태 잠잠하며 비밀스럽게 움직이던 멧비둘기는 둥지에 알을 낳고 암수가 들썩인다. 조금 오르다 만난 청딱따구리는 팔목 굵기의 가지를 골라 두둘기는데 저러다 골 터져 졸도하시겠다. 열린원림문화 향유로 미음완보히다가 임천한흥에 겨워 쓴 딱따구리 작품은 이렇다. 산중 적선 – 임천한흥.025 / 온형근 삼부 능선 초입에서 청딱따구리 반긴다. 그의 소리는 길가로 나오다 묻힌다. 대신 그가 노래할 .. 2022. 4. 6.
원림의 ‘닭울음소리’가 주는 정원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 『온형근의 「열린 원림 문화」 향유』 -04. 원림의 '닭울음소리'가 주는 정원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 국내에 정원박람회를 비롯한 많은 가드닝 열풍에서 ‘2012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시민정원 중 「공간창조」라는 정원은 닭장(Chichen Coop)과 닭장의 벽면에 녹지를 조성한 생산녹지 작품이다. 이때는 정원에 ‘닭장’이 어떤 의미일까를 놓쳤으나, 오래도록 각인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져 문화를 만들어 내는 시공간에 인류의 오래된 사육 가축인 ‘닭’의 상징성과 실용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성찰하게 되었다. 어둠을 물리치며 새벽을 깨우는 상서로운 ‘닭울음소리’는 계명성(鷄鳴聲)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예수의 말씀이 기억나서 울었던 ‘.. 2022. 2. 8.
신명으로 바라보는 풍광인 ‘어와’의 발견 『온형근의 「열린 원림 문화」 향유』 -03. 신명으로 바라보는 풍광인 '어와'의 발견 고산 윤선도의 원림은 이나 의 해남과 어부사시사의 보길도, 그리고 양주 고산 원림으로 나눌 수 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의 미의식을 와 결부시켜 해석하면 유난히 ‘신명’의 미의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계절이 겨울이니 어부사시사의 「동사」를 하나 떠올려 신명으로 바라보는 풍광을 향유한다. 붉게 물든 벼랑 푸른 절벽이 병풍같이 둘렀는데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크고 작은 물고기를 낚으려나 못 낚으려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쪽배에서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채 흥에 겨워 앉았노라 「동사7」의 전문이다. 초장에서 단풍으로 붉게 물든 벼랑인 단애(丹厓)와 푸른 절벽인 취벽(翠壁)이 만나 붉고 푸른 절벽인 단애취벽(丹崖翠壁)의.. 2022. 2. 8.
스틱과 등산화가 대신하는 ‘죽장망혜’ 『온형근의 「열린 원림 문화」 향유』 -02. 스틱과 등산화가 대신하는 '죽장망혜' 고산 윤선도는 55세(1641)에 지은 금쇄동기(金鎖洞記)에서 “나의 산수에 대한 고질병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니겠는가(夫我山水之癖 不已過乎)”라고 원림 조영과 경영 행위를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라는 뜻으로 ‘벽(癖)’이라고 지칭한다. 병들었다는 ‘벽(癖)’은 오늘날의 신조어인 ‘덕후’에 해당하는 접미사 용법으로 한 분야에 시간과 정성을 쏟고 몰두하는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벽’은 미친다는 ‘광(狂)’, 어리석다는 ‘치(痴)’로도 불리었다. ‘산수(山水)’에 대하여 고칠 수 없는 병이 든 조선 최고의 원림 조영가인 윤선도의 ‘벽’은 책에 빠진 이덕무나 고양이 그림에 빠진 변상벽에 비하면 ‘벽’, ‘.. 2022. 2. 8.
소나무 오솔길이 진달래를 잡아 끄는「송간세로」 길 『온형근의 「열린 원림 문화」 향유』 -01. 소나무 오솔길이 진달래를 잡아 끄는 「송간세로」 길 「열린 원림 문화」 향유의 첫 단추를 ‘송간세로’로 시작한다. 송간세로(松間細路)는 조선 성종 때의 정극인의 「상춘곡」에 등장한다. 불우헌 정극인은 벼슬의 영광은 없었으나 선비의 삶을 살았고 검소와 소박으로 이 나라 가사문학의 첫 장인 「상춘곡」을 창작하였다. 32행부터 34행의 내용에 송간세로의 원림 풍광과 원림에서의 행위가 드러난다. 32 松間 細路에 杜鵑花(두견화) 부치 들고, 33 峰頭(봉두)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34 千村萬落(천촌 만락)이 곳곳이 버려 잇. 소나무 사이 좁은 길에 진달래꽃을 붙들고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 벌여 있다고 표.. 2021. 12. 21.
『열린 원림 문화 향유』 연재 계획 온형근의 「열린 원림 문화」 향유 연재 계획 -생활 속에서 즐겨찾는 산행을 지역 시민 활동을 통하여 한국정원문화(韓國庭苑文化)의 원형을 수용하는 차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 누구나 언제라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일상에서 원림을 공유하며 즐겁고 풍요로운 일상을 추구한다. 이를 통하여 생태 감수성과 도시의 생태적 삶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정원문화생활로 진입할 수 있다. -소유 경제에서 공유 경제, 마을 만들기, 사회적 기업 등 인류의 대안적 삶의 양식이 주목되고 있는 시점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지역 산림자원을 통한 산행 등의 취미 생활을 시민 원림 생활로 승화시켜 그 정신적, 물리적, 신체적 행복과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더 느린 삶과 더 나은 일상으로 대별되는 일상에서의 산행을 전통원림.. 2021. 12. 21.
느티나무 겨울 군집 공간마다 특유의 기운이 있다. 계절마다 뿜는 분위기도 다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시공간을 아우르는 위안이 있다. 느티나무 군집은 사람을 모은다. 한여름 그늘이더니, 아니었다. 겨울, 계절의 구별을 꺾었다. 쪼그려 앉아 쉴 때, 나도 저 품안에서 위안이다. 겨울 가지 사이로 희끗 건조하고 메마른 도시의 불빛이 파르르 떤다. 뭣도 아닌데 뭣인양 진지하여 삼엄한 것은 선천적으로 기질에 맞지 않고, 뭣인데도 뭣이 아니라 손사레치는 것은 남사스러운 짓에 체질적으로 알러지가 있음이라. 내가 느티나무 씨를 뿌려 길렀으니 그들이 서른살을 넘겨 한창 사유의 지평이 깊고 푸르다. 느티나무 씨앗, 들깨 한 알 크기가 우주를 넉넉하게 품었다. 고독한 혼자였을 세월이 있어 장년의 늠름함이 의젓하다. 그러니 어쩌랴, 여전히 혼.. 2021. 1. 8.
신명에 대한 일 고찰 신명, 신과 인간이 밝혀 내는 일, 신인묘합이다. 평소에는 각자이지만 생동의 에너지가 지피는 작용으로 묘합을 이룬다. 신의 경지,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지상의 생명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의 능력을 섭취한다. 그러니 신명의 차원이 있어서 무심과 무위의 경지를 터득한다. 지적 사유가 아니라 세상 일의 고되고 거친 순간까지도 내려 놓을 줄 아는, 지극한 지상에서의 깨달음이다. 노장보다는 석가의 깨달음에 가깝다. 민중의 무심의 경계가 곧 자연미이면서 무심이다. 무심은 신명에서 촉매가 이루어진다. 2021. 1. 7.
명분과 대의, 각오 큰 뜻 하나 세울 수 없다면, 그 뜻으로 나를 몰아갈 수 없다면, 남은 시절은 참으로 초라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무엇으로 인생의 여백을 맞이할 것인가, 가슴 뛰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대의에 입각한 공부, 지금까지의 삶을 모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살면서 번창했던 가지를 다시 줄기로 모아 뿌리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에게 한 인터뷰 기사가 떠오릅니다. 살기 위해서 길을 열자는 최명길과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자는 김상헌의, 남한산성 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냐는 질문에 작가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둘 다 대의입니다. 최명길도 김상헌도. 살자는 것과 죽자는 것도 둘다 대의에 놓여 있습니다. 이 놓여있음의 지점. .. 2020. 12. 16.
고산의 출처에 대한 생각 사군자(士君子)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출(出)과 처(處)일 뿐이다. 그런데 그 출처(出處)의 도(道)는 때에 따를 뿐이니, 출사(出仕)해야 할 때에 은퇴(隱退)한다면 그것은 옳은 도가 아니요, 은퇴해야 할 때에 출사한다면 그것도 옳은 도가 아닌 것이다. -고산유고>고산유고 제5권 하>서>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는 서[送張翰歸江東序] 고산의 벗, 강동사람인 장한이 벼슬하였는데, 하루아침에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니, 부귀를 어디에 쓰리오."하며 옷깃을 떨치고 떠나갔다. 그 일을 통하여 나아감과 물러남에 대하여 쓴 이야기이다. 고산 뿐 아니라 조선의 사대부에게 이러한 출처관은 꽤 익숙한 관념이다. 고산에게 나아감이란 '때'를 아는 것이다. 그 '때'라는 것의 충족 조건을..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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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의 사유와 인식 체계 고산의 사유 또는 인식 체계에 이르는 경로를 살핀다. 크게 4개의 고리로 잇는다. 꼭대기에 입신을 둔다. 세상에서 떳떳한 자리를 차지하고 지위를 확고하게 세운다는 立身을 말한다. 처세에 몸을 바로 꼿꼿하게 세운다는 말이다. 그렇게 한 시절을 보내는 와중에 배척된다. 포부와 들뜸에 기초한 푸른 꿈의 의지를 눈꼴사납게 보던 정적 또는 이해 당파에 의해 따돌림이 시작된다. 거부하고 밀어 내치는 일이 거듭된다. 배타적 소외 앞에서 올바름에 대한 의지는 커진다. 자기 수양과 정체성에 대하여 경건한 접근이 한결같다. 가까이 가려고는 않지만, 가까이 오지 못하게 원천 봉쇄하는 排斥이다. 오지마라고 물리치고 또 물리치는 배척의 한 시절이 누적되면 유배와 만난다. 배척도 억울한데 이제는 죄인이 되어 귀양을 떠난다. 流配.. 2020.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