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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탐구/시경詩境-한국정원문화

신인합일의 조화로운 원림 미학

by 온숨 2024. 2. 26.
철원 고석정 전경 (2024.02.06.)

신인합일과 접화군생으로 다가서는 원림 미학

 

몸과 마음의 결연함

 
목도리 푼 목덜미로 부는 듯 마는 듯 살랑대는 바람은 제법 선선하면서도 언뜻 차다. 게으른 산행 출근길로 햇살은 35도의 각을 이루며 뜨는 중이다. 햇살은 막 켜진 전기스토브처럼 닿는 부위만 따사롭다. 이 시간을 걷는 이들은 한결같이 무표정이다. 심지어는 건널목 신호등 앞에 섰다가 녹색불이 들어와도 좌우로 고개를 둘러보지 않는다. 스윽 발걸음을 내딛는다. 마치 알 것은 이미 다 알았다는 결연함이다. 더 이상의 앎도 빛나는 재능도 넘치는 감각도 손사래 한다.
 

습관의 섭생적 반복


따사로운 햇살이 정수리와 얼굴을 감지한다. 잠시 따스함이 온몸을 한바퀴 돈다. 여기저기 뼈마디 에린 곳이 두두둑 소리 신호로 화답한다. 더 걷기 뻐근하면 쪼그린다. 협착으로 쪼그릴 때마다 무게 나가는 체중과 무릎을 걱정한다. 상대적 부와 빈곤의 관계이다. 평지 걷기를 마치기 전 쪼그려 뒤돌아 보는 습관은 장려할 만하다. 산길 입구 급경사를 오르면서 신기하게 협착은 사라진다. 처음부터 언덕길 오르며 몸의 마디를 정렬했어야 했던 설계였나 보다. 습관은 섭생처럼 반복하며 일정 영역을 만든다.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라 알아채기 힘들다.


장난기라는 스크레치

 
해를 등지고 오르는 언덕배기의 언 땅은 품고 있던 얼음을 발치하듯 뽑았다. 질지 않고 푸석하다. 어제 하루 빠진 산행 탓이다. 옷고름을 풀고 옛길의 방위를 살핀다. 북서쪽은 얼음이 박혔거나 녹는 중이라 질퍽하다. 실척의 내 그림자가 나보다 앞서 나선다. 몸집 굵고 엎드린 길이가 짧다. 휘젓는 양손이 참 바쁘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휘젓고 걸었을까. 휘젓던 손으로 썼던 문장과 시는 지금쯤 안도하며 쉬고 있을까. 그나마 오늘은 조금씩 드리우던 우환의 그림자를 턴다. 장난기가 발호되면서 치기 어린 농으로 스크래치 긋는다. 같은 기운이면 조화로웠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신인합일은 자연과의 조화

 

신인합일은 접화군생의 또 다른 말이다. 좋은 기운을 동시에 향유하며 희희낙락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그러니 세심한 관찰과 기다림의 숨결을 고를 일이다. 섣불리 재단하고 나서지 않는다. 합일과 접화는 조화로운 원림 미학의 이상적 가치이다. 자연에서 나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최고의 경지이다. 자꾸 연습하고 훈련한다. 사람의 다양한 욕망에 근접하는 일보다는 한결 수월하다. 자연은 늘 소박하다. 그러니 언뜻 평온하다. 이러한 자연을 원림으로 삼는다. 시를 쓰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달밤에 대금을 분다. 좋은 친구와 주신을 영접한다. 풍류는 가깝다. 멀리 있는 소중한 것들은 다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지금 앉은 달밤의 난간 마루가 지극한 우주이다. 그러니 너와 나의 해학이 발현한다. 이 어찌 신명 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