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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한국정원답사

영일일화-1618년 기장에서 배소를 옮긴 뒤에 지은 시

by 온숨 2022. 12. 12.

오늘 핀 꽃은 내일이면 빛이 없으니 / 甲日花無乙日輝
한 꽃이 두 아침의 빛을 보기 부끄러워서라네 / 一花羞向兩朝暉
해바라기는 날마다 기우는 풍도와 같으니 / 葵傾日日如馮道
누가 천추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리 / 誰辨千秋似是非

윤선도 지음, 이형대, 이상원, 이성호, 박종우 옮김, 국역 고산유고, 소명출판,  2004, p.104.

[주-D001] 풍도(馮道) : 오대(五代) 시대의 재상(宰相) 이름이다. 일생 동안 후당(後唐), 후진(後晉), 거란(契丹),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다섯 나라의 조정에서 여섯 명의 임금을 섬긴 것을 자랑하며 장락로(長樂老)라고 자호(自號)한 고사가 전한다. 《新五代史 卷54 馮道列傳》

[주-D002] 천추(千秋) : 한(漢)나라 전천추(田千秋)를 가리키는데, 기회를 잘 이용하여 임금의 뜻에 영합함으로써 재상과 같은 고위관직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 혹은 무능한 재상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한 무제(漢武帝) 때에 위 태자(衛太子) 유거(劉據)가 강충(江充)에 의하여 무고(巫蠱)의 화를 당한 끝에 자결하였는데, 고침랑(高寢郞)으로 있던 전천추가 꿈에 백두옹(白頭翁)의 교시를 받았다고 가탁하면서, 급변(急變)의 상소를 올려 태자의 억울함을 적극 변호하자, 무제가 곧바로 그를 대홍려(大鴻臚)에 임명하고 몇 달 사이에 승상(丞相)으로 임명하는 한편 부민후(富民侯)에 봉한 고사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서(漢書)》 권66 〈차천추전(車千秋傳)〉에서는, “천추가 다른 재능이나 학술도 없고 벌열이나 공로도 없이, 단지 한마디 말로 상의 뜻을 쾌하게 함으로써 순월 사이에 재상과 봉후의 영광을 차지하였으니, 이는 세상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千秋無他材能術學 又無伐閱功勞 特以一言寤意 旬月取宰相封侯 世未嘗有也〕”라고 평하고 있다. 참고로 이백(李白)의 〈국가행(鞠歌行)〉 시에 “그대는 또 보지 못했는가. 전천추가 남보다 뛰어난 재지도 없이, 하루아침에 귀신처럼 부귀를 차지한 것을.〔又不見田千秋才智不出人 一朝富貴如有神〕”이라는 말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25 補遺》 전천추는 만년에 연로하여 작은 수레〔小車〕를 타고 궁궐에 들어오는 특전을 입어 차 승상(車丞相)이라고 칭해졌으므로, 흔히 차천추(車千秋)라고 부른다.

갑일화무을일휘 - 갑일이 오늘이라면 을일은 내일이다. 갑일화는 오늘 핀 꽃을 말한다. 을일휘는 내일까지 빛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무을일휘는 내일까지 빛남은 없다는 말이다.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일화수향양조휘 - 일화는 한 꽃을 말한다. 수는 부끄러움이고, 향은 바라본다, 향하다이다. 그러니 양조는 두 개의 왕조를 말한다. 가깝게는 두 임금이다. 두 임금을 향하는 것은 부끄럽다는 말이 되니, '한 꽃으로 두 번의 아침을 바라보는 것은 부끄럽다'가 되겠다.

규경일일여풍도 - 규는 해바라기이다. 경은 기운다이니 해바라기가 고개 숙인다는 말이다. 일일은 날마다, 여풍도는 풍도와 같다는 말이니 '날마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는 풍도와 같으니'이다. 풍도는 오대십국 시대의 재상 이름이다. 다섯 나라에서 여섯 명의 임금을 섬겼다고 한다.

수변천추사시비 - 수변은 누가 따지겠는가? 라는 의문문이다. 천추는 한나라 때 기회를 잘 이용하여 잘 보여 재상이 된 자를 말한다. 천추사는 천추를 닮았다고, 천추와 비슷하다는 말이고, 시비는 옳고 그름이다. 그러니 '아부쟁이 닮았다고 옳고 그름을 누가 따지겠는가'이다.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한 꽃으로 두 번의 아침을 바라보는 것이 부끄러워서다
날마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는 풍도와 같이
아부쟁이 닮았으니 옳고 그름을 누가 따지겠는가

여기서 시의 제목은 영일일화인데, 영은 시를 읊는다는 뜻이니까..일일화가 무엇이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여기서 일일화는 목근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래 일일화(一日花)이지만 여름에서 가을까지 긴 기간에 걸쳐 계속 핀다고 하여 무궁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이상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 넥서스BOOKS, 2004.). 일일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지는 꽃이라고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 했다. '조개모락화'는 『이아』, 『본초강목』 등에 이름이 나오고 중국의 시가에도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조개모락화는 식물의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니라 꽃의 생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아』의 「석초(釋草)」에서 무궁화의 별칭인 단(椴)과 친(櫬)을 설명하면서 "즉 조생모락화를 말하는데 오늘날에는 목근이라 한다(卽 朝生暮落花也 今亦謂之木槿)"라고 하였는데 이로 보면 처음에는 조생모락화로 부르다가 뒤에 목근으로 부른 듯하다.

고산 윤선도는 일일화(목근, 무궁화)의 조개모락화라는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다. 아침에 피어 한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기개를 표상한 것이다. 윤선도의 유명한 '오우가'에서처럼 사물의 속성을 세밀하고 정성스럽게 관찰하여 사람의 기개에 비유하였다. 윤선도가 바라본 무궁화의 속성은 그래서 시퍼런 날이 서있다.
(2022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