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룽나무는 늘 그 땅의 가장 내밀한 기름진 곳에 선다. 설사 기울거나 가파르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필요한 것은 분명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다. 성장이라는 게 영육의 기름짐에 있다면 귀룽나무의 선택은 지능적이고 생의 본질에 충실함이다. 어머니를 뵈러 청계에 가면 이 자리에서 귀룽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그래서 안온하다. 물론 꽃이 피는 5월초에 이 꽃 앞에 설 수 있다면 한 해가 행운이다. 전에는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근무할 때 운동장 너머 간이 수목원 숲에서 뽐내는 것을 관찰하였더랬는데, 이제는 이렇게라도 보고 있다. 봄 일찍 새순 또한 잔잔한 색상에 매료된다. 오늘은 입춘이다. 입춘의 기운이 귀룽나무로 옮겨간다. 입춘에 바라볼 수 있는 귀룽나무 하나 쯤은 곁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서 귀룽나무를 찾아야겠다. 5월의 귀룽나무 아래에 서면 흰밥 고봉으로 차려주는 어머니의 밥상같겠지.
-이천이십년 이월 초나흗날 여언재에서 월백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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