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9일, 연구소는 한창 무르익는 중이다. 충전대 위에 놓인 전화기에서 아는 이름이 뜬다.
아, 와룡매 꽃눈이 어떤가를 알고 싶어 전화하셨구나 했다.
와룡매 근황 2020-삼일절,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와룡매를 친견하다.
위의 기사를 쓰고 나서 못 만났다. 내가 부여에서 작년 7월에 올라왔으니 8개월이 지났다.
"와룡매 앞에서 찍은 사진을 아무리 찾아도 안나온다."
"딸이 묘비 뒤에다 그 사진을 넣겠다고 하여 찾는 중이다"
그렇다. 올해 와룡매는 꽃망울이 제대로 올라올 것이라 기대하였다. 2019년 3월 13일에 임창순 교장님과 지인들이 함께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에 모였다. 와룡매 이야기를 최초 발굴하여 일본과 한국의 수필잡지에 상재한 분이다.
그때 이식하여 뿌리 내리지 않은 상태라 2년 후인 올해를 기대하였다. 그런데 현대아산병원이란다.
"제대로 걸렸어, 췌장이야."
엊그제 건강하신 친애하는 선배 형님을 2개월만에 돌아가시게 한 동명의 병환이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어떻게 견디십니까?"
할 말은 많은데 혀가 굳는다. 사진은 내가 찾아서 보내면 된다고 하였다. 이후 문자와 통화를 한번씩 더 나누었다.
임창순님의 와룡매 이야기가 몇 번 더 쓰여져야 하는데, 이제는 마감의 수순에 들었다. 올해의 와룡매는 내가 정성껏 기록을 남겨야겠다. 당장 달려가 사진이라도 찍어 살아계시는 동안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해 드려야겠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면서 임창순 선생님과의 인연을 되새긴다. 와룡매가 매개되어 각각 글을 발표하였다.
이라는 글을 쓰고 나서 실제 이를 계기로 충남 서천에서 찾아뵙고 수원농생명과학고에서 두 번째 만났으니 물리적 만남은 자주 살갑지는 않은 셈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만난 친구나 가까운 공간에서의 친구 못지 않게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 가슴에 자리잡은 분이시다.
두 번의 만남이라는 횟수와 상관없이 그와 나는 깊은 정신적 공감과 신뢰로 상대방의 의중을 그냥 읽고 풀어낼 정도이다.
"되게 걸렸어"
고통과 비탄 앞에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담백함이 그의 말대로 제대로 와 닿는다.
"고통을 어쩌지요"
무지 아프다는데 아픈 것을 참고 온전힌 정신으로 나와 통화를 할 수 있었으니 그 5개월은 대체 뭐겠냐는 항변인 셈이다.
고통의 끝을 오가면서 가족과 죽음을 준비하면서 기어코 와룡매 탐매단과 찍은 사진을 묘비 뒤에 새기겠다는 데까지 이른 과정이 뭉클하면서 아리다. 내 얼굴도 묘비 뒤에 최초 등장인데 직접 볼 일 있겠다.
오래 병상에 누운 상태에서도 아직 의사소통은 명료하다. 그래도 힘들어 보일까봐 따님에게 내 전화번호를 전해주고 통화하게 해달라 했다.
발병과 투병 과정, 그리고 그간의 어록을 간추릴 셈이다. 아마 오늘쯤 전화 연결이 될 것이다. 나도 서둘러 산행출근을 하고 수원농생명과학고에 달려가 와룡매 근황 사진을 슬프도록 많이 찍고 있을 것이다.
와룡매 근황 2020-삼일절,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와룡매를 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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